[기자의 시각] 내 손안의 24시간 불법 도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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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29. 오후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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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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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작년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사범 2925명을 검거했다고 25일 발표했다. 놀라운 점은 그중 3분의 1이 19세 미만의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1만원을 걸었다가 붙잡힌 9살 초등학생도 있었다. 중·고생 12명은 도박사이트를 직접 운영했고, 6명은 사이트 광고에도 가담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청소년을 잡았다는 건 낯설지 않지만, 도박범까지 어려지고 있다는 건 놀라운 충격이었다.

도박에 빠진 초·중·고생은 마치 먹이사슬처럼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경찰에 검거된 청소년의 48.1%(498명)는 “친구 소개로 도박사이트의 맛을 처음 봤다”고 했다. 홀짝·사다리타기 같은 단순 노름에만 빠진 것도 아니었다. 바카라, 파워볼, 슬롯머신, 카지노. 초·중·고생과는 어울리지 않는 종목들에 고르게 중독돼 있었다. 스마트폰 게임 앱으로 접근성도 높아진 데다 자기 명의 계좌나 문화상품권만 있으면 회원 가입도, 도박금 충전도 쉬웠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도박장은 멀리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도박에 빠질수록 부모의 마음은 조용히 타들어간다. 술·담배와 달리 도박은 부모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답답해진 학부모들은 맘카페에 눈물겨운 호소문까지 띄웠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인터넷 은행도 전부 탈퇴시켰고 모든 앱은 내가 승인해야만 깔 수 있게 했다”며 “제발 경각심을 갖고 아이들을 살펴달라”고 애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도박 빚 갚아주느라 수천만원을 날렸다”며 “보이스피싱처럼 도박도 피해 계좌를 동결하는 법률을 만들어서 이 비극을 멈춰 달라”고 읍소했다.

아이들의 교육 책임은 일차적으로 가정에 있겠지만, 학교와 교육 시스템 역시 태만에 가까웠다. 지난 6개월 동안 994명의 청소년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도박을 했다고 한다. 한 중학생은 “반 남학생 14명 중 13명이 도박을 한다”고 했다. 도박 예방교육에 학교는 책임을 다했을까. “갑자기 가족한테 선물을 주면 도박을 의심하라”고 한 학교도 있었는데, 가정에만 책임을 떠넘긴 건 아닐까.

학교를 안 다닌다고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 밖 청소년(가출 청소년)도 34명 붙잡혔다. 참담한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경찰은 “도박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져 학교 내 도박 예방 교육이 특히 중요해졌다”며 “빚이 쌓이면 다른 범죄로 빠지는 사이버도박이 얼마나 위험한지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의 태만을 에둘러 꼬집은 것이다. 가정도 학교도 손을 놓는 동안, 아이들은 점점 도박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내 손안이 24시간 불법 도박장이 된 시대, 총체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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